돼지농장 실습

2019.02.03.

“그럼 돼지는 누가 키워?”

  • 실습의 시작

돼지농장으로의 실습을 결정한 이유로 몇가지가 떠오른다. 첫째로, 양돈분야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작년에 투자회사에서 근무할 때 가끔씩 축산업과 관련된 회사에서 투자유치를 하러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수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축산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현장경험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농장의 내부를 둘러보고 싶었다. 질병 예방을 위한 철저한 방역 때문에 농장 출입은 내부관계자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관련 수의사로 일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평생 돼지 농장에 들어가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멋진 하얀 가운을 입고 커다란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고 있을 때, 흔치 않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실습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사의 지독한 냄새와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돈분처리, 몇 백 몇 천마리가 넘는 돼지들을 한 번에 관리하는 업무 등 육체적인 피로가 뒤따르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정한 사료를 먹고 나오는 돈분의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한 번에 억대에 해당하는 큰 돈이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름 즐겁게 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수의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소동물수의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소동물수의사 이외에도 수의사는 대동물수의사, 양돈수의사, 양계수의사, 실험동물 수의사, 야생동물 수의사 등 여러가지 전문분야가 따로 있다. 다만 정해진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 없이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서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나만의 길을 정하는 방법이다. 현대의 모든 1, 2차 산업이 그렇듯이 많은 부분이 수직계열화와 장치설비사업이 되어버린 것이 양돈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산업동물군인 양계분야는 확실히 하림이라는 회사에 의해 수직계열화가 구축되었지만, 양돈분야에서는 아직 대기업이 전체 시장의 5% 만을 차지하고 있다. 양돈 분야의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도드람, 다비육종, 삼화육종 등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넓히는 시도 중이지만, 대부분 영세한 농가들이 농장사업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점이 재밌는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해 한 달간 농장생활로 깨달은 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양돈 산업은 전문적인 영역이고, 양돈 수의사는 여러 영역을 오가는 사업가이다” 라는 것이다. 양돈 분야에서는 돼지 농장을 짓고 질병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이해해야하고, 굉장히 큰 규모의 자본이 움직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소비시장의 경제적인 흐름도 읽어야하며, 돼지의 생산성 증대를 위한 첨단기술 융합과 환경보호, 동물복지 등 서로 쉽지 않은 여러 요소가 존재한다. 양돈 수의사는 이 모든 흐름을 읽고, 농가에게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지 고민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양돈 산업은 1980년대에 수많은 소규모 농가가 돼지를 기르기 시작한 것을 출발점으로, 1990년대에 국가적 지원과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육성 농장의 출현에서 지금의 전업화 및 기업화의 산업구조를 이루었다. 세계적으로는 영국이 한 때 양돈 산업의 독보적인 선두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 다수의 전염병 발병으로 불안정해진 돈가를 막지 못한 정책적인 실패가 지금의 위축된 영국의 양돈 산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덴마크가 양돈 분야에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으며, 독일, 네덜란드, 브라질, 미국, 스페인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국내 양돈 산업의 구조를 크게 생산과 유통, 약품과 설비산업으로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생산 분야에서는 GGP종돈장, GP종돈장, PS농장, 번식농장, 육성농장, 일관사육농장 등의 비지니스모델이 있고 유통 과정에는 도축장, 경매장, 도소매 및 가공업체 등이 있다. 첫째로, GGP(Great Grand Parents)종돈장에서는 순종돼지를 육질이 우수한 품종으로 개량하여 육종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둘째로, GP(Grand Parents)종돈장은 앞선 GGP종돈장에서 받아온 돼지로 비육돈 생산에 사용할 번식돈(F1, the first Filial generation)을 생산하는 농장이다. PS(Parents Stock)농장은 일반적으로 비육돈으로 쓰일 3원 교잡종(YLD, 품종명 요크셔-랜드레이스-듀록)을 생산하는 농장이다. 번식농장, 육성농장, 일관사육농장은 모두 PS농장의 세부 분류로써, 번식농장에서는 모돈 교배로 얻은 자돈을 출하하는 사업구조이고, 육성농장은 자돈을 받아와서 키운 비육돈 출하로 돈을 버는 곳이다. 일관사육농장은 번식농장과 육성농장을 모두 한 곳에 갖춘 농장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농장에서 출하된 돼지가 도축되면 1)경매를 통해 경락가격으로 혹은 2)도매업체의 직매를 통해 등급별/생체 지육률별 정산이 이루어진다. 도매업체 다음부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형마트나 정육점, 일반음식점에 해당하는 소매업체로 넘어간다.

<양돈 산업의 생산 분야>

<양돈 산업의 유통 분야>

지금까지 국내 동물약품 전체의 절반이상이 양돈 분야 위주로 성장했을만큼, 동물약품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가 바로 양돈 분야이다. 특히 백신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제약회사가 백신을 관납하면 국가에서 각 농가에 어느정도 지원해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소, 돼지, 닭을 모두 포함한 산업동물 분야의 국내 동물약품 시장의 크기는 2017년 기준 약 6천억원의 규모이다.

양돈 산업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는 PSY와 MSY가 있는데 모두 생산성과 관련된 지표이다. 이는 양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집약적 생산방식으로 변화한 양돈 산업에서 더 나은 생산성을 위해서는 좋은 설비가 필수적이게 되었고, 굉장히 많은 시공업체들이 축사 건설부터 여러 설비 제작까지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센서를 활용한 자동급이기, 온습도 자동 조절 장치 등 ICT 융합 축산업으로의 변화가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양돈 산업의 가장 큰 소비시장은 우리가 위치한 아시아에 있다. 중국을 포함해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돼지고기 소비량이 끈임없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우리나라 또한 1인 가구를 위한 간편식의 증가와 함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도 계속 상승세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나라에서는 인기 없는 삽겹살 부위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돈가가 유럽과 미국의 10배에 이르면서, 1990-2000년대 양돈 농가가 짧은 기간에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삽겹살에 소주를 먹는 회식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양질의 소고기와 수입육 등 다양한 단백질 공급원을 찾게되면서 앞으로의 국내 돈가는 예전만큼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하고 있다.

  • 실습 내용

기본 방역 및 조치

농장 업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철저한 방역이 우선이다. 농장은 반경 수십 km이내에 마을이 없는 시골짜기에 위치해야 하며,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자를 위한 기숙사에 입실하는 것이 농장과의 첫 만남이었다.

농장 외부와 내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마치 학창시절 짝꿍과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면 안되는 놀이를 했던 것처럼,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오전에 기상하여 기숙사에서 농장으로 출근하면, 여러 개의 방을 거쳐 점차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외부탈의실과 샤워실, 내부탈의실, 세탁실, 그리고 마지막에 현장사무실에 도착하게 된다. 농장마다 구조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와 내부를 넘나들 때는 항상 샤워와 환복이 필수라는 점이다. 방역의 기본은 질병 전파를 최대한 예방하는 것인데, 사람과 옷가지 소지품 등이 모두 세균과 바이러스 입자의 전파 매개체가 되기 때문에 샤워와 세척이 매일같이 이루어진다.

내가 실습한 농장은 모돈 1,000두 (총 돼지 두수 약 10,000두) 규모의 큰 농장이었는데, 임신사, 분만사, 자돈비육사를 모두 관리하는 일관 사육농장이었다. 각각의 돈사마다 6~8개의 큰 방으로 나누어 1배치, 3배치 등으로 부르며 한 배치마다 20~50개의 작은 방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었다. 같은 내부 안에서도 한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이동할 때에도 정해진 장화로 갈아신어야 하는 것도 기본 방역에 포함되며, 다른 돈사로 이동할 때에는 샤워와 환복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방역 시스템을 몸에 익히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돼지를 자세히 살펴보기 이전에 사료급여, 돈분처리, 설비보수 등 기본관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쉽게 말해 밥주고 똥치우고 망가진 것 고치다 보면 대부분의 일과가 지나고, 돼지의 상태는 이러한 업무 중간중간에 함께 눈여겨봐야 하는 것이다.

임신사

보통 돼지농장의 한 사이클은 임신사로부터 시작이 된다. 임신사의 주업무는 후보돈 혹은 초산돈과 경산돈의 발정주기를 정확하게 체크하고, 최적의 시기에 종부(인공수정)를 통한 교배를 진행하여, 이후 115일(3개월 3주 3일)의 임신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임신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내가 실습한 농장에서 임신사는 교배사, 초기사, 말기사의 세 건물로 나뉘어 관리하고 있었다. 돼지의 발정주기는 21일이며, 배란일 발정징후는 전후 48-72시간만 지속된다. 또 배란 이후 난자의 생존기간은 8시간, 정자의 외부환경 생존기간은 24시간으로 성공적인 종부를 위해서는 이 모든 조건을 최적화하는 시간 계산이 필요하다. 실습 농장에서는 오전에 발정징후를 보이는 모돈에게는 당일 오후, 다음날 오전, 다음날 오후까지 총 세번의 종부를 진행했다. 48-72시간의 발정징후를 보이는 기간의 2/3 혹은 3/4 지점에 배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진행하는 것이다. 다음 발정주기 예정 일자인 3주차에 발정 재발체크 후, 귀를 쫑긋 세우고 승가를 허용하는 등의 발정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면 임신 초기사로 넘어간다. 초기사는 임신 약 70일째까지 머무는 곳으로, 유산이나 발정재발을 수시로 체크하며 안정적인 임신을 위해 BCS(체평점)을 모든 개체가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분만예정일 1주일 전까지 말기사로 이동하여 스톨이 아닌 군사에서 생활을 하게되는데, 분만 이전에 꾸준한 운동으로 출산시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서열싸움 및 관리의 어려움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분만예정일이 다가오면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는 분만사로 이동한다.

분만사

분만사에서는 모돈의 순탄한 출산을 돕고 태어나는 새끼들을 간호분만하며, 이후 2-3주의 포유기간 동안 모돈과 자돈의 건강을 책임진다. 돼지는 다산성을 보이는 포유동물로써, 품종과 관리정도에 평균 산자수는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보통 10두 이상, 덴마크의 경우 20두 이상을 보이고 있다. 실습 농장의 경우 한 배치당 48두의 모돈을 위한 분만실이 있고 총 6배치의 시설이 있었는데, 분만예정일이 비슷한 모돈들이 한 배치로 이동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새끼들이 태어났다. 모돈의 경우 난산으로 힘들어할 때 유방 마사지를 통한 분만 자극, 음수를 통한 발열 스트레스 감소, 기계적 압박을 통한 자궁 수축, 심할 경우 자궁경관 이완제 및 옥시토신 등의 호르몬제 투여를 통해 출산을 도와줄 수 있다. 자돈의 경우 태반에 쌓인채로 세상에 나오면 질식사로 사망하기 때문에 얼른 태반을 제거해주고 인공호흡으로 숨을 쉬게 해줘야한다. 정상적인 분만의 경우 얇은 태막에 쌓여나오며, 태막을 벗겨주고 흡습제를 발라주어 빠르게 몸을 말리고 어미젖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태아를 모두 출산하고 태반이 자궁에 정체되어 있는 경우를 후산정체라고 하는데, 계속 잔여물로 남아있게 되면 자궁염을 유발하게 되므로 심한 경우 입수를 통해 손으로 빼내어준다. 태어나면서 죽은 사산과 발달과정에서 퇴화된 미라, 그리고 어미밑에 깔려죽는 압사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압사는 깔린 새끼가 내는 소리를 통해 들리는 즉시 꺼내주어 살려낼 수 있다. 돼지는 사람과 달리 어미젖을 통해 체액성면역(IgG)과 세포성면역을 모두 물려받기에 초유를 반드시 먹어야한다. 또 자돈에게 모체이행항체가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분만 이전에 모돈에게 호흡기 질환 백신을 주어 자돈의 항체형성을 돕는다. 분만 며칠 후에는 단미, 철분제투여, 항콕시듐제투여, 웅돈 중성화 등의 자돈처치 과정이 있다. 이후 어미젖을 물리는 3주동안 자돈은 추가로 비타민제와 젖먹이 사료를 먹고, 백신을 맞으며 무럭무럭 자라나서 자돈사로 이동하게 된다.

자돈-비육사

손바닥만했던 자돈이 100kg가 넘는 비육돈으로 크는데에는 반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어미젖을 떼고 이유입식을 통해 자돈사로 넘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F1(번식돈)후보돈, 암컷, 수컷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다시 큰 자돈은 큰 자돈끼리, 작은 자돈은 작은 자돈끼리 따로 울타리에 속하게 구분한다. 자돈-비육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돈, 즉 아픈 돼지를 관리하는 것인데, 환돈방이 따로 있어서 주로 또래의 자돈보다 작은 위축돈들이 모여서 사료를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며 사료도 잘 먹지 못하는 환돈의 경우 주사치료를 진행한다. 또 모든 건강한 자돈에 대해서는 구제역과 돈단독 등의 체계적인 백신 프로그램을 통해 질병을 예방한다. 자돈이 자라나서 비육돈이 되면 약 110kg일 때가 출하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도축장으로 운송수단을 타고 이동하게 된다. 자돈-비육사에서 독특한 점은 자돈 일령별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관리시 가장 일령이 낮은 돈사부터 시작하여 점차 일령이 높은 돈사로의 업무 진행 순서가 있다는 점이다.

  • 실습을 마치며

사실 실습 자체를 통해서는 수의사의 역할보다는 주로 돼지를 기르는 일을 배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종사자 분들과 축산 전공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마지막으로 양돈 분야 수의사분들의 세미나를 통해 양돈 산업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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