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료 사기극, Bad Blood

역사적으로 우리는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 등 여러 번의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현재 가치에 미래 가치를 더하여 국가와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1990년대 후반에는 사람들이 장미빛 미래를 과대하게 평가하다가, 실체가 없는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며 세계경제의 위기였던 닷컴버블을 지나오기도 했다. 이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지역에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초거대기업들과 이를 따르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이며 전세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국가적인 성장을 넘어서 전세계적인 성장동력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테라노스의 대표 엘리자베스 홈즈도 실리콘밸리에서의 거대기업을 꿈꾸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반의 서비스기업과 대비하여 의료 분야의 스타트업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용자의 편의성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은 아주 단시간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동시에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지만 의료 분야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사람의 생명이 시험대에 오를 수 없다는 점에서 관련된 법률과 인허가 절차가 매우 까다로우며, 오랜 검증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분야에 적합한 진단기기와 치료기기는 하드웨어에 기반되므로 프로토타입에서 실제 상품으로 제작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Bad Blood>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책이지만, 마치 추리/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준다. 셜록홈즈 한 시리즈를 읽는 듯, 테라노스라는 외딴 섬과 같은 회사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법률적 소송에 압도되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개개인들의 비밀스러운 증언과 자살 사건까지도 포함된 실제 이야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포브스의 올해 인물 선정’,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 창업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 달성’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면서도, 내부고발로 사기극의 사실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범법자로 법정에 서기까지는 한 순간이었다. 유니콘이라는 거대기업의 가치가 종이 쪼가리로 변하기까지, 테라노스 대표 엘리자베스 홈즈 개인의 큰 잘못도 있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만을 재촉하는 시스템적인 모순도 느낄 수 있었다.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의료 분야는 집에서 혼자 프로그래밍을 배워 창업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서비스업과는 달리, 대학 중퇴자가 단지 번뜩이는 발상 하나로 성공을 이뤄내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분야이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결과를 입증하고 임상 데이터를 통해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기까지 오랜 검증 기간과 숙련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엘리자베스 홈즈는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기업의 영업 비밀이라는 미명하에 계속해서 사기극을 전개해나갔다. 중저음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카리스마 있는 여성 창업가라는 모두의 은근한 기대감 속에 화려한 언변으로, 수많은 의료 비전문가들을 속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양심 있는 과학자들과 의사로 이루어진 내부고발자 및 언론인들을 통해 사기극이 단번에 드러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홈즈가 직원들에게 사내연애를 거짓으로 잡아뗀다면, 과연 또다른 거짓말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모든 것을 밝혀낸 실마리가 되었다는 것이 참 흥미롭기도 했다.

셋째, 폐쇄적이고 단편적인 회사 문화를 구축하여 부서별 소통의 부재로 업무의 비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회사 대표가 모든 정보를 독식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고자 함이었는지, 계속되는 거짓말이 탄로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는지, 그 어느 경우에서도 강압적인 회사 문화는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 홈즈’와 ‘테라노스’, 실리콘밸리의 과속성장 분위기 압박 속에서 개인의 탐욕적이고 조급한 자만심이 함께 과열되어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나아가 회사에 거대 자본과 무자비한 로펌이 합쳐져 힘 없고 죄 없는 피해자들까지 만들어냈다. 언론인인 책의 저자가 스토리를 구성해내며 자극적으로 풀어낸 면도 없지않아 있었겠지만, 그만큼 테라노스의 사기극이 마치 한 편의 범죄 스릴러 소설처럼 긴장감 속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 같다.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 속, 군입대로 4주간 기초훈련을 받으면서 사회와 고립된 상황에서도 책을 원서로 읽으니 미국에 다녀온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외에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상에 부유한 사람은 정말 다양한 곳에 많이 있다.
  2. 미국에서는 소송이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 하기도 한다.
  3. 비지니스와 법률 싸움에서도 사람의 감정이 주된 요소가 된다.
  4. 의료 분야의 혁신은 충분한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5. 세상에 비밀 없는 거짓말은 없고, 언젠가 진실은 드러난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